<(non)Blind-Spot>
<(non)Blind-Spot>
2025. 09. 19 - 10.02
장소: PS CENTER(서울 중구 창경궁로5다길 18, 3층 )
기획: 제삼기획 (강다원 X 이유민 )
참여 작가: 김민, 김소희, 노예주, 안진선, 머피염, 이예란
라운드테이블 패널: 김강리, 노예주
전시 리뷰: 손하늘
번역 검수: 조진영
공간 조성: 함영훈
운송 및 설치: 아트 들이다
그래픽 디자인: 박현지
촬영: 남형석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2025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젊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 퍼지면서 이들은 더 이상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담론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
이들은 처분 가능한(disposable) 인구의 일부로 간주된다”¹
청년이 사회 발전의 도구로 소모되는 현실에 관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로 전시를 시작한다. 이는 청년의 젊음이 숭배(cult)의 대상이 되면서도, 동시에 국가 발전을 위해 소모되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현실을 의미한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교육을 노동으로 지불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동시에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IMF 이후로 희망이 사라진 도시를 살아가며 국가 발전에 무관심한 개인주의 집단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대를 향한 파편적인 평가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고, 누구에 의해 정의되었는가? 다층적 청년의 양상을 균질화하는 기존의 세대론을 향한 의문은 동시대 청년의 담론에서 비가시화된 현상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나 ‘N포세대’²처럼, 경제적 지표에 따라 시대의 위기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대표적인 청년 담론인 ‘88만원 세대’가 등장하던 시기의 청년층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는 ‘잉여’였는데, 이는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호칭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사회는 청년을 경제적·사회적 권력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호명은 청년을 스스로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고, 특정한 위기의 세대로 고착하는 현상을 유래했다. 이는 ‘386 세대’나 ‘X세대’처럼 사회 변혁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이나 찬란했던 90년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보다는 더 암울해진 시대를 반영한다. 한편, 동시대의 ‘MZ 세대’는 출생 코호트³로 정의된 M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를 포괄하는 단어로 88만원 세대, N포세대와 동일한 청년세대를 지칭한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부터 Z세대를 과연 동일한 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88만원 세대의 구조적 빈곤과 암울함은, MZ에게 덧씌워진 소비 세대의 ‘철들지 않은’ 이미지와 모순된다. 이러한 호명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청년의 다양한 현실을 일반화한다.
전시의 제목《(non)Blind-Spot》에서 ‘Blind Spot’은 사각지대를 의미하는 용어로, 오늘날의 주류 세대론에 가려진 청년의 자리를 비유한다. 전시에서 작가들은 모두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출생했고 동일한 사회적 기억을 공유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이행기 세대에게 요구되는 개인의 생애주기별 노동에 조금은 빗나간 삶을 영위하거나, 그러한 태도나 과업에 따른 슬픔을 작품에 충실히 녹여 왔다.
사회정책 대상으로서의 청년은 경제적 시민으로서 노동시장에서 일을 해야 시민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청년으로 균질화⁴되어 왔다. 그러나 작가들은 국가 발전의 차원에서는 수용되지 않는 사회 활동과 가사 노동을 포함한 비가시적 노동, 쉽게 대체되는 비정규직 근무, 조명되지 않았던 병역 거부자 혹은 마사지사의 존재, 경제적 시민으로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는 청년의 불안정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세대 속 개인으로서, 오늘날의 미시적인 문제들을 톺아보는 작품으로 나타난다. 작품들은 사회적 재생산 노동과 거리가 있다. 전시는 거대한 사회의 한 켠에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는 노동과 그것을 다루는 작가들을 통해 수단으로 소비되지 않는 청년 주체의 각각의 모습을 제안한다. 기존의 세대주의 시선은 불평등의 원인과 작동 방식을 은폐한 채 집단 간의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이익을 취해왔다. 그러나 청년은 공동의 운명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실제 세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만하임의 말⁵에서, 오늘날 청년의 위기에 대항하는 연대를 상상할 수 있다.
노예주는 회화 작가이자 활동가로, 자신이 참여하고 접해 온 투쟁 현장을 그린다. 작가는 동물권 운동에서 출발해 장애인 이동권 투쟁, 미등록 이주민 운동, 재개발과 강제 집행으로 인해 쫓겨나는 이들과 연대하는 도시 운동처럼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활동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운동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회화 작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관한 고민과 연결된다. 작가는 극적인 순간만을 포착할 뿐 아니라, 신발 끈을 고쳐 묶는 동료, 농성장 천막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등 투쟁이 지속되는 일상적인 장소를 살펴 기억하고 회화로 그린다. 이 장면들은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포착하게 된 투쟁 내부의 모습이다. 노예주는 분주한 현장과 이를 표현하는 작가의 역할 사이의 거리감을 고민하고 그 현장을 회화로 재현하는 윤리와 방법에 관해 질문한다.
이번 전시의 〈텔레그램〉(2025) 연작은 현장 내부에서 빠져나와 바깥의 시선에서 접근하여 기존과 다른 방법론을 취한 회화다. 해당 작품은 작가가 이전과는 달리 시위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메신저 ‘텔레그램’으로만 현장 분위기를 접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반영한다. 휴대폰으로 포착된 불완전하고 저화질의 이미지들은 아이폰13과 동일한 크기의 14.7 x 7.1 cm 캔버스 16점에 옮겨진다. 이어 〈스크린〉(2025)에서 휴대폰으로 촬영된 사진은 확대된 화면으로 재현되어 불분명하게 늘어진다. 또한, 이미지는 확대될 수 있지만 장소에 다가갈 수 없는 위치의 한계가 이렇게 불명확해진 화면에 반영된다. 총 18점의 그림은 모두 휴대폰 액정 표면에서 작가가 파악한 현장 이미지를 그린 것으로, 액정의 매끈함과 그 위로 반사되는 상은 레이어의 개입으로 구현된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에서는 휴대폰 액정과 연동되는 이미지의 평면성이 감지된다. 이를 통해 노예주는 ‘현장’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안으로 다가갈 수 없는 위치로 관객을 밀어낸다. 사건에 더 다가갈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은 투쟁이라는 노동의 한 형태를 통해 제안되면서 누군가의 슬픔과 절실함을 이미지로 접하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공명한다.
김소희는 장소와 환경이 사회 제도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탐구하며, 그 속에서 지워진 노동 주체와 신체를 드러낸다. 작가는 실제 장소에 자신의 몸을 개입시키는 행위를 통해 주변 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에 균열을 낸다.
〈파트타임 썬샤인〉(2020)은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을 드로잉으로 옮긴 작업이다. 아르바이트는 독일어 Arbeit(노동, 일하다)에서 유래했지만, 한국에서는 임시·시간제 노동을 지칭한다. ‘알바’, ‘알바생’은 쉽게 대체 가능한 임시 인력, 혹은 잠시 일하는 학생을 연상시키며, 이들의 노동은 법적 권리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비가시화된다. 작가는 카운터 안쪽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자신의 위치를 태양에 비유한다. 태양은 멀리 배경으로 여겨지지만, 종이를 태울 만큼 강력하다. 작가는 아르바이트 시간마다 태양 사진을 촬영하고, 이후 돋보기를 통해 그 사진을 태운다. 종이가 실제 태양열에 훼손된 드로잉은 은폐된 노동을 물리적 흔적으로 남기며, 청년 노동 주체를 드러낸다. 〈반죽 서비스〉(2025)는 도시 길거리의 마사지샵 광고 속 여성 노동의 이미지가 자신의 일상과 괴리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일은 돌봄을 수행하는 모성적 이미지, 혹은 성적 매력을 제공하는 사물적 이미지로 대상화된다. 퍼포먼스에서 나누어 먹을 음식을 만드는 행위와 신체를 마사지하는 행위는 뒤섞인다. 작가는 거대한 빵 반죽을 치대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몸짓을 드러내고, 관객은 퍼포머의 숨찬 호흡을 듣는다. 이는 노동의 소리이자 동시에 성적 뉘앙스를 함의하며, 여성 노동을 수동적이고 순응적으로 바라보는 관객 스스로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그들이 나를 볼 때 나도 그들을 봅니다〉(2025)는 마사지샵 광고 이미지를 직접 만지는 여정을 기록한다. 마사지 노동은 전문적이고 고된 서비스 노동이지만 낮은 사회적 위상과 성 산업과의 연관성, 여성 중심 직종이라는 인식 등으로 인해 대상화된다. 김소희는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마사지샵 내부에 들어가 건물 외벽에 붙은 광고 시트지를 손으로 만지고, 관객은 오로지 녹음된 소리를 통해 내부와 접촉하는 과정을 추측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고 이미지를 멀리서 소비하는 익숙한 위치에서 벗어나 외부인과 노동자의 위치가 전환될 수 있음을 드러내며, 비가시화된 노동을 촉각적·청각적 경험으로 가시화한다.
머피염은 익숙한 공간에 자리한 기성품을 본래의 장소로부터 분리하고 규칙적인 기계의 리듬을 지닌 작품으로 새롭게 제작한다. 작가는 주위에서 사회적 의례나 관습에 의해 기능이 정해진 사물들을 발굴하고 수집한다. 어린아이의 인형, 낡은 벽지, 작은 액세사리처럼 ‘귀여운’, 때로는 ‘추억’을 상기하는 물건들을 작품의 재료로 삼아, 유년 시절의 기억에 있는 어렴풋한 노스탤지어를 끌어 올린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물로 조형물을 제작하고 관객에게 공유 가능한 아련함으로 제시한다. 이때 머피염은 ‘허구적 노스탤지어(fake nostalgia)’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확실한 추억에 도사린 연약함과 허구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조작된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애틋한 시간으로 만든다. 이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기억을 형성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작가는 한없이 연약해지는 추억이 구성된 욕망일 수 있음을 주지한다.
머피염은 이번 전시에서 어딘가 세련되지 않은 벽지, 이미 사용해 뜯어진 박스, 영유아 돌봄 기구에 설치된 바운서(bouncer)를 활용해 〈Stuck〉(2025)을 제작한다. 전시장 벽면에 매달린 부드러운 꼬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아이에게 안정을 주는 돌봄 기구는 꼬리라는 동물의 일부와 결합하여, 본래 사물에 깃든 목적을 잠시 망각하게 한다. 이는 돌봄 기구에 고착된 돌봄(노동)의 목적을 제거하고 기계적 회전이라는 특성으로 바꾸어 관객에게 최면과 각성 같은 효과를 전달하는 것이다. 고양이 꼬리와 박스라는 상반된 사물의 결합으로부터, 꼬리가 모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낯섦이 감지된다. 한편, 〈Time after Time〉(2025)은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작가가 친동생에게 부탁해 제작한 영상과 함께 명품 쇼핑백을 진열한 작품이다.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오랜 기억 속의 사물을 대리로 만지는 동생의 손, 그리고 외피만이 중요한 자본주의의 산물인 명품 쇼핑백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허구적인 기억’와 연결된다. 영상 속에서 필통은 기능을 잃은 채 추억을 환기하며, 쇼핑백과 함께 현재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희미한 만족감을 주는 사물로 현실에 잔류한다.
안진선은 도시와 공간 속에서 감지되는 불안과 진동을 탐구하며, 신체가 공간과 맺는 관계를 설치 작업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바닥·벽·천장과 같은 물리적 요소가 우리의 안정감을 어떻게 흔드는지에 주목하며, 불안을 단순한 부정적 감각이 아닌 새로운 관찰과 경험의 계기로 전환한다. 이는 곧 도시가 지닌 불안정한 층위, 즉 흔들리는 구조물과 소음, 미세한 진동과 같은 현상들이 우리의 신체를 통해 체험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불안정한 구조물이나 진동, 긴장감은 관객의 몸을 매개로 다시 체험되며, 도시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지관묶음〉(2023)은 지관과 화물차 고정 벨트를 사용해, 무거운 화물 트럭과 건축 현장과 같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에서 비롯된 소음과 진동을 형상화한다. 팽팽히 당겨졌지만,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구조는 불안한 긴장을 유발하며, 도시 속에서 쉽게 지나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몸을 통해 감각되는 불안을 시각화한다. 〈밀어내기〉(2025)는 관객이 직접 벽 조각을 밀어내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데, 손바닥에 전해지는 진동과 벽에 남은 흔적은 불안을 신체적으로 전환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흔적은 남지만 과정은 쉽게 사라지는 현대 노동의 구조를 은유하기도 하며, 동시에 내재한 불안을 해소하고 탐구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벽을 밀어내는 낯선 감각은 반복적이지만 기록되지 않는, 비가시화된 노동 경험을 불러내며 일상에서 체감하는 불안정성과 연결된다. 함께 설치된〈관찰을 위한 벤치〉(2025)는 벽을 미는 관객을 지켜보거나 이동한 흔적을 바라보는 자리이다. 이 위치는 행위를 하는 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간극을 드러내며, 노동이 수행되는 방식과 소비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이처럼 안진선의 작업은 도시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감각과 불안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면서, 그것을 해소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실험한다. 청년 세대가 겪는 불안정하고 보이지 않는 노동은 몸의 차원에서 환기하는 문제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불안을 전환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장기적인 탐구와 맞닿아 있다. 관객은 도시의 감각과 세대 경험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불안과 진동을 새롭게 사유하게 된다.
롤플레잉 게임(RPG)에서 NPC(Non-Player Character)는 게임 플레이어가 대리 물인 PC(Player Character)를 통해 수행하지 않는, 여과된 업무를 담당한다. NPC는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게임의 마스터가 설정한 반경 안에서 지시한 역할 만을 수행하고 플레이어의 게임을 돕는 보조적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이예란은 게임 세계 안에서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되는 NPC를, 흰 천을 뒤집어쓴 형체로 표현한다. 그의 회화에서 NPC는 중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임시 인력으로 일했던 노동자로서 작가 본인을 상징한다. 비정규직 근로 형태 안에서 노동자는 그에게 부여받은 임시적인 시공간을 반복적으로 오가고, 고객에 의해 소비되며, 할당된 노동을 충실히 해내야만 한다. 노동자의 신체는 유니폼에 가려지며 사소한 행동과 판단조차도 고용 환경의 규칙에 따라 통제된다. 작가는 이렇듯 주체성이 소거된 상태를, 천을 뒤집어쓴 여러 NPC로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그들 각각이 겪는 모험, 그로부터 출몰하는 슬픔 등의 감정을 만화적 표현으로 담아낸다.
〈구인구직 NPC〉(2025) 시리즈에는 NPC가 자본주의의 심판대에 오른 캐릭터로 그려지며 급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회화에서는 NPC의 초상이 담긴 이력서를 보는 또 다른 NPC가 등장하는 등 하나의 이력서에서 파생된 양상이 비친다. 그러나 이들의 ‘다양성’은 NPC 캐릭터로 통일되며 소거되고 단일한 노동자의 모습만이 떠오른다. 이들의 노동하는 일상은〈NPC#_출근〉(2025)과 이들은〈NPC#_퇴근〉(2025)이라는 대칭의 회화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구인구직 NPC〉와는 달리, 각각의 NPC가 논 플레이어(non-player)를 벗어나 삶의 주체가 된 서사도 함께 제시된다. 예컨대 〈혼란! 위기를 기회로〉(2025)에서는 오물 풍선이 등장하고, 〈새로운 세상이 올 거야〉(2025)에서는 절벽 끝에 선 NPC의 모습을 통해 절망 이후를 고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2024년 북한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을 포함해, 불안했던 한국의 시국에서 출발한 회화이다. 다소 극적으로 표현된 밧줄을 잡아끄는 NPC의 모습, 들어 올려진 깃발은 원형적이고 관습적 상징으로 표현되며, 청년 세대가 다가올 미래를 소망하는 기호로 나타난다.
김민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활동가로, 사회·정치적 시위와 집회의 현장을 기록해 왔다. 2012년부터 그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촬영하는 채증 행위에 주목하며, 이를 반대로 기록하는 역채증을 진행했다. 시민을 촬영하는 경찰을 다시 찍음으로써, 채증 자료가 공권력의 근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성과 이중성을 폭로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동시에 현장에서 개별 존재들이 주체로 서는 순간과 연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신작 〈시멘트 컵케이크(Cement Cupcake)〉(2025)는 병역 거부자이자 대체복무 당사자인 작가가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경험한 장면과 기록을 묶은 작업이다. ‘시멘트 컵케이크’는 병역 거부자들의 투쟁 끝에 도입된 대체복무제가 겉으로는 제도적 성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먹을 수 없는 케이크처럼 청년들에게 무의미한 노동을 부과한다는 현실을 은유한다.
작품에는 대체복무 기간 촬영한 생활관의 사진, 대체복무 일지, 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서류, 양심 심사 기록 등이 포함된다. 이 기록들은 제도가 강조하는 합리성 아래 감춰진 모순과,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적 균열을 드러낸다. 김민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한 개인적 서사를 넘어, 청년 세대가 제도와 마주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사회적 장면으로 확장한다. 대체복무라는 제도는 선택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격리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강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신념의 시간은 노동으로 환원되고, 그 노동은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가시화 노동이 된다. 김민의 사진과 기록은 이처럼 은폐된 현실을 가시화하며, 전시장은 개인의 발화가 집단적 문제로 확장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글. 제삼기획 (강다원 X 이유민 )
[1] 지그문트 바우만, 리카르도 마체오,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나현영 옮김, 현암사, 2016, p. 92
[2] 88만원 세대란 IMF 이후에 성인이 되어 경제적 혼란기를 겪은 1980년대생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과 저임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세대로 정의된다. 또한 N포세대란 ‘N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연애·결혼·출산 등 필수적인 삶의 영역부터 시작해 집 마련, 인간관계, 취업, 꿈, 희망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한 2~30대 청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최샛별,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 연대기』,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pp.67~69)
[3] 코호트는 연령과 역사적 시간을 연결한 개념으로, 코호트는 동일시기에 출생한 집단(출생코호트) 혹은 같은 시기에 결정적인 경험을 공유한 집단을 의미한다. (Alwin, D. F. & McCamon, R.J. (2003). Generations, Cohorts, and social change. In Handbook of the life course (p.25). Springer, Boston, MA)
[4]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청년연구자 되기(청년학개론)』, (사)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21, 중 변금선, 「’이행기 청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p.63 참고
[5] Mannheim, K. (1952). The Problem of Generations. in: Karl Mannheim. Essays on the Sociology of Knowledge (p.304). London: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