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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유민(독립기획)
@dlt.hd / eumin100@gmail.com
1.
'밤'에서 출발해보자. 사전적으로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을 뜻하는 이 시간대1)는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태양을 공전하며 빛을 수신하는 지구에는 필연적으로 낮과 밤이 공존한다. 낮의 반대편에는 밤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낮 시간동안 존재했던 모든 그림자는 밤의 안으로 포섭된다.2)
자크 랑시에르는 19세기 파리 노동자들이 쓴 숱한 일기. 편지. 시, 신문기사 및 지도를 엮어『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저술했다. 노동이라는 거시적인 이야기를 위해 노동하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그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아카이브 글을 제시한다. "노동자의 꿈 아카이브"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단순 노동자의 재현에 머물기보다,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꾸는 노동자의 삶의 병치함으로써 '노동'이라는 단어의 정체성을 전복한다. 랑시에르가 포착한 노동자들은 낮에는 할당된 역할을 수행하지만, 밤에는 글을 쓰고 토론하며 자신만의 사유를 펼쳤다. 그들에게 밤은 단순한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의 시간이 된다.
2.
이예란의 작업에서 노동과 시간의 그의 세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제단은 당신의 시간을 원해>(2024)는 중앙 이미지와 양쪽 날개가 열리는 세 폭의 제단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제단화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거나, 용서를 구하는 제의적인 기능이 강조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예란의 제단화 속 희생 제물이 올라가 있어야 할 중앙의 제단은 텅 비어있는데, 제목을 통해 '시간'의 자리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로 치환되는 시간에 의문을 던짐과 동시에 비효율적이고 비자본주의적 속성을 가진 '그리기'의 행위를 전면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시간이 곧 화폐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활동은 시간당 가치로 환산된다. 자본주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노동을 추상적 노동 시간으로 환원한다.3) 노동자의 개별적 경험과 감정은 모두 시간이라는 단일한 척도로 측정되며, 이 과정에서 주체의 고유성은 지워진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리기나 만들기와 같은 불확실하고 비생산적인 시간을 택한다. 반복적으로 덧칠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가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느린 과정은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반하는 회화적 선언으로 작용한다.
한편 <NPC#>(2022~) 시리즈에서 판넬 위 납작하게 밀착된 감열지가 자본주의의 물화된 시간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 시리즈의 주재료인 감열지는 일상에서 영수증 용지로 사용되며, 시간과 온·습도에 따라 그 색이 변화한다. 감열지 위에 유화로 그려진 NPC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열지의 검은색을 휘발시키며 점차 옅어진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파편화되고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초단시간 노동, 플랫폼 노동 등 축적되지 못하는 파편화된 노동은 존재의 시간을 세밀하게 분할하고 측정 가능한 단위로 만들어 상품화 한다.4) 현대의 비물질 노동은 물질적인 생산을 넘어 주체성 자체를 생산하는데,5) 이 과정에서 노동의 시간이 자본에 의해 분할되고 소유될 때, 주체는 자신만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감열지 위 NPC들은 이처럼 쉽게 소모되고 빠르게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불러내어, 대체가능한 주체의 조건을 가시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예란의 세계에서 노동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작품들은 일상에서 노동을 뺀 나머지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NPC는 이주를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것처럼, 어딘가에 정착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이주_불불불조심>(2024)에서 가방을 들고 떠나는 NPC들의 뒤로 비춰진 불타는 지평선은 <종말하는 세상에서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2025), <클로즈 업/ 더 가까운 물방울>(2025)의 공통적인 배경이 된다. 타오르는 화면 속에 머무르는 NPC에게 손을 내밀거나(<종말하는 세상에서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2025)), NPC의 얼굴과 표정을 크게 확대하여 감정을 집요하게 그려낸 것은(<클로즈 업/ 더 가까운 물방울>(2025)) 세계가 종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보다는 연대와 돌봄의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NPC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위치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찾아 떠난다. 때문에 불타는 지평선은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풍경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한다.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벗어나 대안적인 세계를 짓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회화 전반을 관통하는 내러티브와 분절된 평면성으로 현시된다. <셋, 둘, 하나>(2025), <너만은 내가 지킬 수 있기를>(2025)는 컷의 배열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는 만화처럼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이야기를 전달한다. 또한 나란히 병치된 <그림자와 러브레터>(2024), <첫눈에 알아볼 수 있어>(2025)는 두 개의 판넬로 구성된 작업으로, 한 개의 판넬이 한 컷(cut)이 되어 개체적인 독립성을 가지는 동시에 긴밀하게 연결된다. 작가에게 캔버스와 판넬은 틀(frame)과 테(girth)의 역할로써 벽면으로부터 독립되는 한 구획인 것이다. 더불어 말풍선, 과장된 문장 부호, 장식적인 테두리 선과 같은 시각적 코드와 어법은 만화적 표현 방식의 일종인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회화에 사용하는 것을 통해 회화는 정지된 한 장면이 아닌, 연속적인 시간 흐름의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다. 이예란이 자주 구사하는 대표적 표현으로는 플래시 말풍선6)이 있다. 말풍선은 감상자들의 시선을 NPC로 집중시키고, 긴급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하는 기호적인 도상으로, 전반적인 작가의 회화에 그려져 있다. 이들은 하나의 하이퍼 텍스트처럼 감상자의 능동적인 해석에 따라 비선형적, 비순차적인 체계로 회화-컷을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다음 컷으로 시각의 이동을 유도한다.
이렇듯 회화를 통해 구현된 이예란의 시간은 이제 영상 매체를 통해 지속된다. <멈추지 않는 몸, 투명해지는 시선>(2025, 단채널비디오)은 목적지를 알 수 없이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움직이는 경로는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되었다. 움직이는 화면 위로 또 다른 이동하는 영상이 겹쳐져 상영되고, 누군가의 나래이션 같은 텍스트가 시작된다. 작가가 실제로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이동하며 촬영한 이 영상들은, 회화 속 NPC들이 보여주었던 끝없는 이주와 이동의 감각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한다. 주목할 점은 영상의 선형적인 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겹쳐지는 이미지들과 반복되는 이동은 목적지가 없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 이동이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의 효율적 이동이라면, <멈추지 않는 몸, 투명해지는 시선> 속 이동은 과정 자체에 머무르는 이동이다. 1인칭 시점의 카메라는 감상자를 끝없는 이동에 동참시키며, 투명해지는 시선이라는 제목처럼 이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는 회화에서 구현했던 NPC-대체 가능하면서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불안정한 존재-를 시간 기반인 영상 매체의 특성을 통해 더욱 강화한다.
3.
다시, 이예란의 작업을 읽기 위해 '밤'으로 되돌아가자. 랑시에르의 19세기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이예란에게 밤은 견고히 제도화된 시간에 틈을 내는 시도이자 해방의 영역이다. 낮ㅇ의 시간이 물화된 시간, 즉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되어 소유되고 교환되는 시간이라면, 밤은 물화로부터 이탈하는 시간이다. 작가는 그간 낮의 시간에서 미끄러진 NPC들을 주목해 화면에 그려 왔고, 동시에 시를 통해서 꾸준히 쓰고 남겼다. 작가에게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흙을 빚어서 도자기를 만드는 행위는 자본주의적 생산성과 무관한 일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마크 피셔가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7)이라 명명한, 자본주의 외의 다른 체제를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조와 한탄보다 이 시간을 견디는 더 큰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밤이 모든 그림자를 포섭하듯이, 이예란의 화면은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연다. 물화되는 시간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밤의 가능성일 것이다. 완전한 해방이나 급진적 전복이 아니라, 현재의 틈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해방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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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밤'의미 참조
2) 이예란 작가노트 참조 , 2025
3 )카를 마르크스 , 『자본론 1(상)』,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p. 75-76
4) 물리적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조직하여 관리,감독하던 전통적 노동의 장과 달리 플랫폼, 알고리즘,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 노동을 의미한다. 노동의 형태가 초유연, 초단기, 파편화, 불안정화되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비가시화된다. (모리츠 알텐리트, 『디지털 팩토리-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보이지 않는 노동』, 권오성·오민규 역, 숨쉬는책공장, pp.82-88)
5) 마우리치오 랏자라또,『비물질노동』, 조정환 역,『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 pp.184
6) 만화에서의 플래시 효과는 시각적 임팩트를 더하고 순간적인 움직임이나 감정을 강조하는데 사용된다. 주로 빛의 반짝임, 폭발, 충격파 등으로 표현되며, 포커스 라인이나 집중선과 함께 사용되어 시선을 집중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7) 마크 피셔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프레드릭 제임스와 슬라보예 지젝의 구절을 인용하며 자본주의가 망하고 새로운 대안 체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진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그가 제안한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가?』, 박진철 역, 리시올, 2018, pp. 11-12)